빛으로 움직이는 세균, 살아있는 화학 공장이 되다 — 광영양 대사공학의 현재와 미래

빛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를 활용하여 바이오 연료, 의약품 및 생화학 물질을 생산하는 광영양 미생물 화학 공장의 이소메트릭 3D 모식도.

태양빛만으로 이산화탄소를 연료·의약품·플라스틱 원료로 바꾸는 세균이 실험실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이 기술이 화석연료 의존 산업을 근본부터 바꿀 수 있을까?

석유화학 공장을 떠올려 보자. 거대한 반응조, 극도로 높은 온도와 압력, 쏟아지는 유해 부산물. 그런데 그 모든 공정을 손바닥 위에도 올라가지 않을 만큼 작은 세균 한 마리가 대신할 수 있다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이게 지금 실험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광영양 대사공학(Phototrophic Metabolic Engineering)이라는 분야가 그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빛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세균을 유전자 수준에서 개조해 우리가 원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기술이다 [1, 2, 3].

기후변화 대응, 화석연료 탈출, 지속가능한 산업 — 거창한 구호들이 넘쳐나지만, 실제로 그 해답을 가장 가까이에서 구현하려는 시도가 바로 이 분야에 있다. 그게 이 주제를 파고들게 된 이유다.

광영양 세균이란 무엇인가

광영양 세균(Phototrophic Bacteria)은 빛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 미생물이다.

식물이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듯 이 세균들도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전환해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 [1]. 세부적으로는 두 종류로 나뉜다. 광독립영양균(Photoautotrophs)은 빛 에너지를 쓰면서 이산화탄소(CO₂)를 탄소 공급원으로 삼는다. 식물의 광합성과 유사한 방식이다. 반면 광종속영양균(Photoheterotrophs)은 빛으로 에너지를 얻지만, 탄소는 유기물에서 조달한다.

두 유형 모두 전자 전달계(Electron Transport Chain)를 통해 전기화학적 기울기를 만들고 이것으로 ATP를 합성한다 [1]. ATP는 세포 안 모든 반응의 동력이다. 일종의 '세포 내 화폐'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균이 무언가를 합성하거나 움직이려면 반드시 이 화폐가 필요하다.

광영양 세균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 다양성이다. 특히 Proteobacteria 문(門)에 속하는 것들은 유산소·무산소 환경 모두에서 살아갈 수 있고, 상황에 따라 호흡이나 발효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4]. 이 유연성이 바로 다양한 산업 환경에 적용 가능한 핵심 이유다.

"자연은 이미 수십억 년에 걸쳐 빛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완성해 두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방향을 살짝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빛으로 화학물질을 만드나

광영양 세균이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바꾸는 핵심 과정이 탄소 고정(Carbon Fixation)이다 [2]. 가장 잘 알려진 경로는 캘빈-벤슨 회로(Calvin-Benson Cycle)로,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나 일부 독립영양 세균에서 빛 에너지를 이용해 CO₂를 유기 분자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환원형 TCA(RTCA) 회로3-하이드록시프로피오네이트(3HOP) 이중회로 같은 대안 경로들도 존재하며, 각각 다른 생태적 틈새에 특화되어 있다 [2]. 자연이 단 하나의 해법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는 셈이다.

빛의 종류만 바꿔도 세균이 만들어 내는 물질이 달라진다.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다. 예를 들어 남조류의 일종인 Arthrospira maxima적색광 아래서 엽록소 a 생산이 늘어나는 반면, 청색광 조건에서는 피코빌리단백질 합성이 극대화된다 [5].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원하는 생산물에 맞춰 광원 조건을 '맞춤 설정'할 수 있다.

"빛의 색깔 하나로 세균의 공장 라인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생각할수록 꽤 근사한 발상이다."
광영양 세균의 대사 경로 최적화, 합성 생물학 도구 적용, 시스템 생물학 모델링 및 경제적·환경적 타당성 분석을 포함한 미생물 세포 공장 엔지니어링 프레임워크 도해

그림 1. 광영양 세균 기반 미생물 세포 공장 구축을 위한 통합적 엔지니어링 전략 및 대사 최적화 방법론. 합성 생물학 도구와 시스템 생물학 모델링을 통합하여 광영양 세균의 대사 네트워크를 재설계하고 , 빛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를 고부가가치 화합물로 효율적으로 전환함으로써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탄소 배출을 저감하는 지속 가능한 바이오 제조 공정을 구현한다.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 — 로돕신 대장균 사례

광영양 대사공학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오사카대학교 연구팀의 연구다.

2022년 발표된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대장균(E. coli)로돕신(Rhodopsin)이라는 이질성 막 단백질을 도입했다 [6]. 로돕신은 빛에 반응해 작동하는 양성자 펌프다. 이 펌프가 작동하면 TCA 회로(세포의 기존 에너지 생산 경로)를 거치지 않고도 ATP를 만들 수 있다.

왜 이게 중요한가? 일반적으로 세균이 유용한 물질을 만들게 하려면 성장에 쓰는 에너지를 물질 합성으로 돌려야 한다. 문제는 성장물질 합성 모두 ATP라는 같은 화폐를 쓴다는 점이다. 한쪽에 더 쓰면 다른 쪽이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이다.

로돕신을 이식하면 이 딜레마가 해소된다. 빛이라는 외부 에너지원에서 ATP를 별도로 조달하니까, 세균의 기존 대사 흐름을 건드리지 않고도 물질 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로돕신을 발현한 대장균은 빛에 노출됐을 때 3-하이드록시프로피오네이트, 메발론산, 글루타티온 등 여러 유용 화합물을 훨씬 많이 만들어 냈다 [6]. CO₂ 방출량도 함께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뛰어난 펌프 활성을 가진 '수퍼-로돕신' 균주와 빛 반응 유전자 조절 회로를 내장한 두 가지 추가 균주를 개발했다 [6]. 이미 이 접근법이 다양한 화합물로 확장 가능하다는 개념 증명이 이루어진 셈이다.

합성생물학 도구들 — 어떻게 세균을 개조하는가

광영양 세균을 실용적인 화학 공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한 유전자 조작이 필요하다. 현재 이 분야에서 활용되는 핵심 도구들이 있다 [7, 8].

CRISPR-Cas 시스템은 유전체의 원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잘라 편집할 수 있는 도구다. 대사 경로의 특정 유전자를 켜거나 끄거나, 아예 새로운 유전자를 심을 수 있다. 흔히 'DNA 가위'로 불리는 바로 그것이다. 인공 프로모터와 RNA 기반 조절인자는 유전자 발현량을 미세하게 조율한다. 너무 많이 만들면 독이 되고, 너무 적으면 효과가 없으니 이 조절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여기에 게놈 규모 대사 모델링(Genome-Scale Metabolic Modeling)이 더해진다. 세균 전체의 대사 네트워크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어떤 유전자를 건드리면 목적 물질 생산이 늘어나는지 미리 예측하는 기법이다 [2, 9]. 실험 전에 가상으로 수많은 시나리오를 돌려보는 셈이다. KAIST 연구팀이 235가지 화합물에 대해 5종 미생물의 생산 능력을 체계적으로 평가한 연구도 이 접근법을 핵심 도구로 활용했다 [9].

기존 화학 합성보다 나은 이유

전통적인 화학 합성은 석유화학 원료, 고온·고압 조건, 유해 촉매에 의존한다 [10]. 광영양 미생물 공정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단 재생 가능 에너지(햇빛)를 쓴다. 화석연료 없이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다 [11, 12]. 반응 조건도 온화해서 상온·상압에서도 작동하니 에너지 비용이 낮아진다. 거기다 CO₂를 직접 원료로 소비한다. 탄소 중립은 물론, 조건에 따라서는 탄소 음성(carbon-negative) 공정도 가능하다 [2, 13].

무엇보다 일반적인 화학 합성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의 화합물도 생산할 수 있다. 특정 의약품 원료나 고가 정밀 화합물이 여기에 속한다 [11, 6].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기존 1세대 바이오연료(식용 작물 기반)는 식량 안보와 충돌한다는 비판을 오래 받아왔다 [2]. 광영양 미생물 기반 접근법은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우회하지만, 토지 이용과 수자원 문제는 여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광합성 유기체 다수는 좁은 빛 흡수 스펙트럼느린 세포 성장 주기 문제를 안고 있다 [14]. 광생물반응기(photobioreactor) 안에서 빛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도 생각보다 복잡한 공학적 문제다 [5]. 세포 밀도가 높아지면 스스로 빛을 차단하는 광차폐(self-shading)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조절 회로의 복잡성도 과제다. 현재 세균 합성생물학의 광유전학(Optogenetics) 시스템 대부분은 전사 수준의 조절에 머무르고 있다 [15]. 자연의 생명체가 가진 복잡한 전사 후·번역 후 조절 네트워크를 온전히 모방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경제성도 빠뜨릴 수 없다. 실험실 수준에서는 작동해도 산업 규모로 확대하면 원가 구조가 급격히 달라진다 [2, 16]. 원료비, 효소 비용, 하공정(downstream processing) 비용 모두 산업화의 장벽이 된다. 여기에 각국의 규제 환경이 제각각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크고 [2], 유전자 조작 미생물의 환경 방출에 대한 윤리적 논의도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

시스템생물학과 AI의 결합 — 다음 단계

단순히 하나의 유전자를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연구자들은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 접근법으로 세균의 전체 대사 네트워크를 한꺼번에 모델링한다 [2, 9]. 유전체학, 전사체학, 대사체학 데이터를 통합해 세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합류하면 판이 더 커진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수천 가지 변수를 동시에 분석해 어떤 유전자 조합이 최적의 생산 결과를 낼지 예측한다 [2, 9]. AI 기반 균주 설계는 실험 횟수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상업화 속도를 앞당기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생명의 언어를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 그 전환이 지금 막 일어나고 있다."

아직 기술적·경제적 장벽이 많지만, CRISPR·인공 프로모터·RNA 조절인자 같은 합성생물학 도구들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 분야의 가능성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7, 3]. 빛을 먹는 세균이 화학 공장이 되는 날, 그게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도 있다.

토의: 빛으로 움직이는 세균이 그리는 미래

광영양 대사공학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단순히 '더 좋은 공장'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 생산의 근본적인 에너지·탄소 구조를 바꾸는 시도다.

최근 KAIST 이상엽 교수 연구팀은 5가지 산업 미생물(E. coli, 효모, B. subtilis, C. glutamicum, P. putida)을 대상으로 235가지 바이오 기반 화합물의 생산 능력을 게놈 규모 대사 모델로 평가했다 [17]. 이 연구는 각 화합물에 최적화된 균주와 대사공학 전략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리켜주는 실용적 지도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현실이 있다. 실험실에서 개발된 고성능 균주의 산업화 성공률은 통상 20% 미만으로 보고된다 [8].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부분적인 해답은 AI 기반 세포 공장 설계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효소 제약 대사 모델과 AI를 결합한 연구들은 수천 가지 유전자 조합의 탐색을 계산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18, 19]. 하지만 AI가 예측한 유전자 조합이 실제 배양 조건에서 얼마나 신뢰성 있게 재현될 수 있는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광영양 시스템에 특유한 긴장 지점도 있다. 빛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은 ATP 경쟁 문제를 해소하는 영리한 방법이지만, 실제 산업 규모에서 균일한 조도를 유지하는 것은 심각한 공학 과제다. 간헐적 빛 조사, 광섬유 기반 내부 조명 시스템 같은 접근이 연구되고 있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아직 불분명하다 [14].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현재 세균 합성생물학의 광유전학 도구 대부분이 전사 조절에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도 있다 [15]. 세포 내에서는 번역 후 수정, 단백질 분해, 대사물 피드백 같은 훨씬 더 빠른 조절이 동시에 일어난다. LOVdeg 태그처럼 빛으로 단백질 분해를 조절하는 시스템이 등장하고 있지만 [15], 이런 다층적 조절 회로를 광영양 대사 네트워크에 통합하는 일은 아직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결국, 이 기술이 화석연료 기반 화학 산업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단일 기술의 승리가 아닐 것이다. 합성생물학·시스템생물학·AI·반응공학·정책이 동시에 성숙한 결과일 것이다. 어느 한 축이 뒤처지면 전체가 느려진다. 그리고 그 속도가 기후 위기 대응의 시간 표와 맞아떨어질 수 있는지 — 이것이 이 분야에서 아직 누구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남아 있다.

화석 연료 기반의 전통적 화학 제조 공정과 태양광 및 이산화탄소 흡수 미생물을 활용한 광영양 공장(Light-Powered Factories)의 에너지원, 탄소 발자국, 원자재 및 생산 효율성을 비교 분석한 기술 인포그래픽.

그림 2. 광영양 대사 공학 기반 지속 가능 화학 생산 시스템의 구성 및 전통적 공정과의 비교. 화석 연료와 고열 에너지에 의존하여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존 화학 합성 방식과 달리, 광영양 공장은 태양광 에너지를 동력원으로 활용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고정함으로써 탄소 중립 이상의 탄소 격리 효과를 제공한다. 정밀 합성 생물학 및 유전자 편집 기술로 최적화된 미생물 시스템은 온화한 반응 조건에서도 의약품, 바이오 플라스틱, 연료 등 고부가가치 화합물을 효율적으로 합성하며 환경 부하를 획기적으로 낮춘 미래형 산업 생산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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